월마트의 비용우위전략은?


▣ 월마트의 비용우위전략

 19953, 미국의 대표적인 할인점의 하나인 K마트(Kmart)의 회장 죠셉 안토니니가 회장직을 사임함으로써 30여년에 걸친 월마트(Wal-Mart)K마트 간의 주도권 쟁탈전은 일단 월마트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1987안토니니가 K마트에 부임했을 때만 해도 K마트는 월마트보다 월등히 앞서 있었다. K마트에 2,223개의 점포와 256억 달러의 외형을 갖고 있는데 반하여 월마트의 점포수는 1,198개에 불과했고 매출액 또한 160억 달러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순이익도 K마트가 더 많은 편이었다. 더구나 K마트는 주로 도심의 비싼 땅에 위치해 있었고, 월마트는 대체로 중소도시의 한적한 외곽지역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K마트는 지속적으로 회사 이미지와 점포 애호도를 높이려고 애썼고, 마케팅, 특히 광고에 힘을 기울였는데 그 결과 K마트는 인지도 면에서 월마트와 차이를 크게 벌려 놓을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1980년대 말에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월마트의 점포는 커녕 이 회사의 광고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Wal-Mart의 인지도는 낮았습니다.


 그러나 월마트(Wal-Mart)의 샘 월튼(Sam Walton) 회장은 이에 개의치 않고 본사와 각 점포를 연결하는 컴퓨터시스템과 트럭, 그리고 유통센터의 건설에 많은 돈을 투자하였으며, 유통센터를 중심으로 점포를 개설해나갔습니다월마트는 점포망을 더 잘 통제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유통업계에서 할인점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의 예측에 대하여, 이 두 회사는 전혀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K마트는 할인점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스포츠용품을 파는 스포츠 오쏘리티(Sports Authority), 사무용품 체인오피스맥스(OfficeMax) 등 할인점 이외의 부문을 강화했습니다. 그러나 월튼은 안토니니와는 정반대로 그야말로 모든 것을 할인판매에 걸었습니다. 그는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둔 프라이스 클럽(Price Club)을 본 따서 회원제 할인점인 샘스 클럽(Sam’s Club)을 시작했고, 또한 할인점과 식품점을 결합한 슈퍼센터라는 새로운 영업방식을 개발합니다.

 

 예전에 월튼은 하이퍼마트(Hyper-Mart)라는 슈퍼센터와 비슷한 개념의 점포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하이퍼마트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찾기 힘들 정도로 가게가 지나치게 넓은 것이 흠이었습니다. 그래서 월튼은 하이퍼마트보다 작은 규모의 슈퍼센터를 고안하게 된 것입니다.


 이즈음 월마트는 거의 모든 중소도시에 진출해 있었으므로,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K마트의 아성인 대도시로의 본격적인 진출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안토니니는 이러한 월마트의 침공에 대비하여 무려 35억 달러의 돈을 들여 5년에 걸쳐 K마트의 점포를 대대적으로 쇄신하는 작업에 착수합니다. 하지만 판매현장에서는  점포의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눈에 잘 안 띄는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해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월마트의 정교한 유통, 재고, 스캐너 시스템 덕분에 손님들은 사고 싶은 물건을 늘 가게에서 찾을 수 있었으며, 점원이 물건값을 알아보느라고 시간을 끄는 적도 없었습니다. 반면에 K마트의 금전등록기는 틀린 가격을 찍기 십상이었으며, 그들의 종업원은 훈련부족으로 말미암아 재고를 잘 관리하지 못했습니다.


 1992월튼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뒤를 이은 데이비드 글라스는 모든 부문에서의 철저한 원가절감이라는 월튼의 경영방침을 그대로 계승하였습니다. 그 결과 월마트는 땅값이 비싼 대도시에서도 K마트보다 더 싸게 물건을 팔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각화전략에서도 월마트는 K마트보다 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K마트를 할인점과 전문점의 제국으로 만드려던 안토니니의 계획은 1993년 말부터 실패였음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힘이 분산된 K마트는 할인점 분야에서 급속도로 월마트에게 시장을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전문점의 수익성도 기대에 크게 못 미쳤던 때문입니다. 반면 일반 상품과 식료품을 같은 가게에서 싸게 판다는 개념으로 시작된 월마트의 슈퍼센터는 전국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K마트도 그것을 흉내 낸 슈퍼 K마트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슈퍼 K마트에 돈을 투입하는 바람에  안토니니의 야심 찬 점포쇄신 정책은 타격을 받게 됩니다. 상당수의 점포에 대한 공사를 예정대로 추진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이미 공사가 끝난 점포조차도 기대했던 것만큼 매출이 늘어나지 않았습니다.


 안토니니가 K마트의 회장이 될 때인 1987년에 할인점 분야에서의 K마트의 시장점유율이 34.5%였던 것이, 그가 떠날 때쯤에는 22.7%로 떨어져 있었으며, 같은 기간 동안에 월마트는 점유율을 20.1%에서 41.6%로 끌어올렸습니다.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